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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호탑 이야기

  • 대전청사시절의 휘호탑 관련 사진
    대전청사시절의 휘호탑
  • 과천 국가인재원 휘호탑 관련 사진
    과천 국가인재원 휘호탑

대전청사 시절의 휘호탑

대전청사 시절의 휘호탑 관련 사진
  • 대전청사(괴정동) 시절의 박정희 대통령 친필 휘호탑은 1977년에 세워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관서를 연두 순시하는 길에 30분 일정으로 교육원을 방문하셨는데, 예정에 없이 1시간 반이나 오래 머물러서 의전팀을 당혹하게 하였다.
    브리핑 후, 전체 교육장을 순시하고 식당메뉴까지 직접 확인하며 미래의 지도자들이 불편하지 않은 환경에서 교육받도록 챙기신 것이다. 그리고 다들 고생이 많다며 당시로선 거금인 500만원을 격려금으로 내 놓으셨다. 그때 교육원 한 끼 식비가 500원이니 무려 1만 명분 식대를 주신 셈이다.
    그저 회식 몇 번 하고 소진할 수 없는 돈이기에, 교육원에 뭔가 기념적인 일이 되도록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교육생들의 정신감화에 효과적인 상징물이 될 수 있는 휘호탑을 건립키로 하고, 이를 위한 문안구성을 노산 이은상선생에게 의뢰하였다.
    『내 一生 祖國과 人類를 爲해』, 『쓰이는 사람이 되자』, 『救國濟民』, 『守護韓國魂』, 『爲國盡忠』이라는 5개의 문안을 받아 이 가운데서 『내 一生 祖國과 人類를 爲해』와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해』라는 두 개의 안을 가지고 대통령비서실에 대통령 친필 휘호를 요청한 결과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라는 친필휘호를 받아 이를 조각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사용된 돌은 충북 영동군 심천면 하천에서 발굴하였으며 그 제원을 보면 길이 4.3m, 높이 3.0m, 폭 0.9m, 중량이 약 30톤에 달하였다.
(김용래 전원장님 교육원 60년사 회고담에서 발췌)

과천 국가인재원 휘호탑

과천 국가인재원 휘호탑 관련 사진
  • 과천청사의 휘호탑은 본관에서 구름다리를 지나 식당으로 이동하는 중에 볼 수 있다. 대전청사(괴정동)시절 휘호탑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이 휘호탑이 대전에서 그대로 옮겨 온 것으로 믿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휘호탑을 가져오려고 했으나 엄청난 돌의 중량과 손상우려 등으로 이전이 어렵게 되자 당시 설치장소(현 KT인재개발원)에 그대로 보존케 하였던 것이다.
    차선책으로 과천에 가서 멋진 휘호탑을 다시 만들기로 하고 대전청사 휘호탑과 동일한 탑을 세우기 위해 다각도로 방안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수석채취로 인기가 많은 단양의 상선암 주변으로 결정하고 단양군의 채취허가를 얻어 비슷한 원석을 발견하였으나 바위가 너무 무거웠다. 게다가 당시 충북지사가 우리 교육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충북의 보물을 줄 수 없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단양석의 채취를 포기하였다 그 후 관악산 주변을 탐색하던 중 현재 고시센터 뒤편 관악산 등산로 초입에서 찾고 있던 원석의 머리부분과 비슷한 형상을 발견했다. 원내 관리실 직원을 총동원하여 곡괭이와 삽으로 파내려가 전체 형상을 보니, 대전의 것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교육원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이 역시 워낙 무거워 인력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가 없어 우선 군부대(통신단)에 헬기(CH47형) 2대를 협조 요청하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진입로를 새로 닦아 도로를 낸 후에 크레인을 동원하여 달밤에 몰래 실어 올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과천시에서 항의를 했지만 ‘대통령의 휘호탑’으로 쓴다고 엄포를 놔 돌려보냈다 원석을 옮겨 잘 손질하고 서희환(전 세종대 교수, 작고)교수를 찾아가 휘호글씨를 부탁하니, 그 당시 비용으로 백만원을 달라고 하는데 예산이 없어 그냥 20만원을 주고 큰절하는 걸로 대신했다. 글을 받아 조각하여 세워났더니 전문가들이 보고 한마디씩 하는데, “야! 이 돌은 코끼리상으로 몇 천만원 짜리는 되겠다!” 고 다들 감탄을 마지않았다. 비록 은밀하게 옮긴 과정이 좀 비겁한 ‘이란성 쌍둥이’ 휘호탑이지만, 가끔 가까이서 힘찬 글체와 위용을 쳐다보면 그동안 여길 거쳐 간 우리 교육원 전 직원들의 한 마음이 담긴 걸작품이란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기획협력과 김제경 사무관 기고)